입력 : 2012.10.25 13:34 | 수정 : 2012.10.25 14:01
- 서울에서 해남까지… 국내 최장거리 트레일 워킹코스
스페인에 가리비를 매달고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짚신을 매달고 걷는 '삼남길'이 있다.
삼남길이란 과거 한양과 삼남지방(충청, 전라, 경상)을 잇는 조선시대의 육로교통의 중심을 말한다. 이 길을 통해 보부상이 물자를 나르고, 왕의 행차가 이뤄졌다. 허나 근대에 포장도로로 편입되면서 옛길의 모습은 사라졌다.
역사 속에 사라질 뻔했던 삼남길이 지난 13일 경기도와 수원‧화성‧오산, 경기문화재단, (사)아름다운도보여행 등을 통해 역사문화탐방길로 재탄생했다. 이번에 먼저 개통된 구간은 경기도 수원과 화성, 오산(약 34km)이다. (사)아름다운도보여행 손성일 대표의 도움으로 삼남길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 지난 13일 서울에서 해남까지 연결된 삼남길의 경기도 구간이 먼저 개통됐다.
손 대표를 만난 곳은 도보여행의 출발지인 '지지대고개'다. 편안한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멘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길잡이'의 모습이다. 그의 배낭에는 손바닥 크기의 짚신이 달려있는데, 이는 삼남길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이곳은 정조임금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지대'라는 의미는 과거 정조가 화성에 능행차를 왔다가 돌아가는 걸음이 못내 아쉬워 자꾸 행차를 늦췄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는 "경기도 구간은 정조임금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도보코스에요."라고 설명했다.
▲ 지지대비에서는 정조의 효심과 한국전쟁 당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지지대고개를 지나기 전 그와 함께 지지대비에 들렀다. 이곳에서는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비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총탄의 흔적도 남아있다. 그는 "이곳은 살아있는 역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정조의 효심은 물론 한국전쟁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지지대비 앞으로 난 숲길을 따라 서호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백로와 오리가 노니는 깨끗한 호수로 유명하다. 본래 이곳은 정조가 수원 인근 농업용수가 부족하여 만든 인공호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은 인근 주민들의 안락한 휴식 공간으로 변모했다.
▲ 서호공원 내의 호수는 백로와 오리가 노니는 깨끗한 호수로 주민들의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드넓게 펼쳐진 호수 옆으로 난 둑길을 따라 걷다보면 아래로 황금물결을 일렁이는 논을 볼 수 있다. 도심과 어우러진 모습이 이색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길을 함께 걷던 그는 "삼남길은 인공으로 조성한 길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따라 걷는 길이에요."라며 뿌듯하게 말했다.
둑길과 들길을 따라 걷다보니 화성 '용주사'에 도착했다. 이곳은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조성하면서 만든 절이다. 이곳에서 또한 곳곳에서 정조의 효심을 확인 할 수 있다. 홍살문이나 건축양식, 효행박물관 등을 통해서다.
입구를 지나면 하늘 높게 솟은 홍살문이 눈에 띈다. 다른 사찰과 달리 홍살문이 있는 이유는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뒤편으로는 독특한 형태의 삼문과 맞배지붕이 있는데, 이는 사도세자 현륭원의 재궁으로 지어진 절이기 때문에 궁궐과 비슷한 건축양식을 지닌 것이다.
삼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사찰의 위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왕명으로 세워진 절이라서 그런지 대웅전을 비롯해 전각의 규모가 상당한 크기를 자랑한다. 함께 대웅전을 둘러보던 그는 "경기도 삼남길 구간 중 역사와 문화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죠."라며 "사찰을 비롯한 주변 곳곳에서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어 가족 단위의 관광객에게 최고의 코스에요."라고 말했다.
▲ 용주사 입구의 삼문과 양 옆으로 펼쳐진 맞배지붕은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양식이다.
용주사를 둘러본 뒤 마지막 도보여행지 '독산성'으로 향했다. 화성 세미교를 지나 낙엽이 우거진 소나무 숲을 따라 걸어가는 코스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숲길을 지나면 비교적 잘 정돈된 느낌의 시멘트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활약상이 유명한 곳이다. 당시 이곳에서는 왜군과 대치하며 다양한 유격전술을 펼쳤다. 이를 통해 왜군을 한양에 묶어둘 수 있었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어낸 곳이다.
▲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독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의 활약상으로 유명하지만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다.
정상에서 성벽아래를 내려다보니 화성과 오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르막길을 걷다 지친 몸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주는 기분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이지만 정조의 효심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손 대표는 "옛 사람은 아버지와 닮지 않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이곳에서 정조는 사도세자가 했던 세 가지 일을 똑같이 따라 하며 효심을 표했죠."라고 말했다.
▲ 독산성 정상에서는 인근 화성과 오산의 전경이 한 눈에 볼 수 있다.
당시 이곳을 찾은 사도세자는 백성의 고충을 물어보고, 창고의 곡식을 풀어내려주었으며, 진남루에서 과녁을 쏘아 4발을 연속으로 맞췄다고 전해진다. 정조 또한 이곳에서 백성의 고충을 물어보고, 곡식을 풀어내려주었으며, 과녁을 5발 쏘아 4발을 맞췄다고 한다.
산성을 함께 걷던 그는 "단순히 도보여행이라고 해서 걷는 것이 아니에요. 등산처럼 정상에 오를 필요도 없고요. 힘이 닿는데 까지 걷고, 쉬고 싶은 때 쉴 수 있는 매력이 있죠."라며 "또 길 곳곳에 산재된 역사와 문화, 이야기 등은 도보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 충분해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여행이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 '삼남길'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기존의 숲길과 흙길 등을 이용해 개통됐다.
한편, 경기도는 수원, 화성, 오산 구간 이외의 잔여구간인 안양, 평택, 의왕, 과천 구간을 추가로 개발하고, 삼남길 외 의주길, 영남길, 경흥길, 강화길, 평해길 등 엣 도보길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 여행정보
삼남길 경기도 수원 ~ 오산 구간 (약 34km)
1구간 서호천길 (골사그내~서호공원입구) 7.1km 구간으로 약 2시간 소요
2구간 중복들길 (서호공원 입구~배양교) 7km 구간으로 약 2시간 소요
3구간 화성효행길 (배양교~세마교) 6.8km 구간으로 약 1시간 50분 소요
4구간 독산성길 (세마교~세교지구 6단지) 7.2km 구간으로 약 2시간 소요
5구간 오나리길 (세교지구 6단지~맑음터공원) 5.3km 구간으로 약 1시간 4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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